랩실 인턴 생존기/연구

기초과학자로서의 삶을 생각해보기

행복한 소쩍새 2025. 2. 9. 02:24
그러니까 사실은 원래 목표했던 곳에 거의 못 갑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이제 막 학계에 들어선 사람이 처음으로 구상한 가설이 맞을 리가 없죠. 이렇게 헤매고 저렇게 헤매고 연구하다 보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결과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과학자가 탐험가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탐험(연구)의 목적은 호기심과 명예입니다. 그냥 궁금해서 하는 것이고, 만약 잘되면 첫 번째로 이름을 남길 수 있겠죠.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연구가 인류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잘 설명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초 연구의 비밀을 폭로하고자 합니다. 미국의 화학자였던 Homer Burton Adkins는 “기초 연구란 허공에 활을 쏜 뒤 활이 떨어진 자리에 과녁을 그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처음부터 정해진 과녁을 향해 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상 깊은 결과는 때로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나옵니다. 콜럼버스는 인도에 가지 못했지만, 유럽 사람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다만 죽을 때까지 인도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발견에는 뜻밖의 행운을 뜻하는 Serendipity가 필요합니다. 마치 여행지의 잘못 들어간 길에서 멋진 장소를 발견하는 것처럼요. 결론입니다.

과학자는 연구를 왜 할까요? 

우연한 결과에서도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기 위해서 연구를 합니다. 

출처: [BRIC Bio통신원] [연구제안서의 이해] 1) 연구를 왜 할까?, https://www.ibric.org/s.do?vGXhEohtSy

 

 

나는 현재 기초과학쪽 랩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실 이 연구실의 연구분야는 내 생기부의 중심주제와 직결되는 학문이다. 바로 신경유전학이다. 고등학교때만 해도 단지 흥미가 있었을 뿐이고, 대입을 위해 억지로 쓴 거였는데 이렇게 랩실까지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인생은 정말로 모르는 일인 것 같다.

 

기초과학 랩실에서 근무하다 보니, 몇가지 든 생각이 있다. 바로 기초과학자로서의 삶은 정말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같이 근무하는 대학원생 형은 기초과학자는 탐험가와 같다고 했다. 목표지점은 있지만 거기로 가는 길을 몰라 끝없이 헤맨다고 말이다. 때로는 막다른 길에 막혀 우회하기도 하며, 도저히 답을 찾지 못한 채 수년을 방황하는 삶이었다. 내 옆자리에 계신 대학원생분만 하더라도 3년째 같은 실험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얼마나 힘든 일일까? 물론 힘든 것은 공학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기초과학의 경우에는 연구를 하더라도 큰 돈을 얻는다거나 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야말로 기초과학이니까. 성공을 원하다면 기술 관련 연구를 했어야 한다. 그러나 기초과학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름 그대로 기초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초과학은 공학이나 의학과 같은 응용학문의 기초가 되는 순수학문이다. 탐구심과 열정으로 가득찬 학문이다. 대학원생 형은 자기는 본래 생명공학과를 나오기는 했지만, 순수한 궁금증을 갖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습에 이끌려 기초학문 랩실에 들어왔다고 했다. 참으로 매력적인 것 같다. 

 

미국의 화학자였던 Homer Burton Adkins는 “기초 연구란 허공에 활을 쏜 뒤 활이 떨어진 자리에 과녁을 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내가 제대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미지의 세계로 나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다. 아, 연구란 얼마나 가슴을 울리는 일인가. 

 

그러나 나는 기초학문에는 몸을 담지 못할 것 같다. 그 길이 너무 험난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저 길을 죽는 그날까지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응용학문인 의학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초학문이 좋다. 그러니 잠깐 동안은 이 분야에 몸을 담고자 한다. 삶 전체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이 시간이 좋다. 논문을 읽고, 궁금증을 떠올리고, 실험을 배우는 모든 과정이 재밌다. 삶의 의미가 탄생한다. 기초과학이란...얼마나 매력적인 분야인가.